[25학년도] 수능 국어-언매 3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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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지문 - 2문단]과 [자료]를 통해 탐구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지문]
훈민정음 반포 직후 간행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보면 표기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훈민정음」(해례본)의 팔종성가족용, 즉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로 모든 끝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는 원리는 세 문헌에서 모두 예외가 보이는데 예외가 되는 표기가 서로 달랐다.
고유어의 이어 적기와 끊어 적기에서도 이들은 차이가 난다. 체언과 조사, 용언 어간과 어미의 결합에서,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은 이어 적기 방식을 취했다. 다만 「석보상절」은 체언의 끝소리가 'ㆁ'일 때 '쥬'(중의)처럼 이어 적기도 하고, '으란'(중은)'처럼 끊어 적기도 하였다. 「월인천강지곡」은 체언의 끝소리가 울림소리인 'ㆁ, ㄴ, ㅁ, ㄹ, ㅿ'일 때와 용언 어간의 끝소리가 'ㄴ, ㅁ'일 때 끊어 적기를 하였고, 그 밖에는 이어 적기를 하였다. 다만, '늘', '말', '우믈'에서는 이어 적기가 보인다.
사잇소리 표기에서는, 「용비어천가」는 'ㄱ, ㄷ, ㅂ, ㅅ, ㆆ, ㅿ'을 썼는데, 이 가운데 'ㅿ'은 '나 일훔'(나라의 이름), '님 '(임금의 마음), '바 우희'(바다의 위에) 등과 같이 모음 및 'ㄴ, ㅁ, ㄹ' 등의 울림소리 사이에서 나타났다. 「석보상절」은 사잇소리 표기에 'ㅅ'을 썼지만 'ㅅ' 대신 'ㄱ, ㄷ, ㆆ'을 쓰기도 하였다. 이와 달리 「월인천강지곡」은 사잇소리 표기를 'ㅅ'으로 통일하였다. 이후 문헌에서 사잇소리 표기는 'ㅅ'으로 통일되어 갔으며, 현대 국어에서 '촛불'의 'ㅅ'처럼 합성어의 사잇소리 표기에 남아 있다.
한자를 적을 때는, 「용비어천가」는 따로 한자의 음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석보상절」은 한자를 적고 이어서 그 한자의 음을 제시하였으며, 「월인천강지곡」은 한자의 음을 적고 이어서 그 한자를 제시하였다.
한편 「용비어천가」는 'ㅸ'을 가진 '다'(되다), ''(혼자)를 이 형태로만 썼는데, 「석보상절」은 '다'는 '다'나 '외다'로 썼고 ''는 '오'로만 썼으며, 「월인천강지곡」은 각각 '외다', '오'로만 썼다.
[자료]
• 뎌녁 ⓐ(+애) 걷나가샤
[저쪽 가에 건너가시어] - 「석보상절」
• 뫼화 그르세 ⓑ담아(담-+-아)
[모아서 그릇에 담아] - 「월인천강지곡」
• ⓒ누네(눈+에) 빗 봄과
[눈에 빛 봄과] - 「석보상절」
• 쏜 살이 세 낱 ⓓ붚(붚+) 여디니
[쏜 화살이 세 개 북만 꿰어지니] - 「월인천강지곡」
• 너희 ⓔ스니믈(스+-님+을) 보고져 노니
[너희 스승님을 뵙고자 하니] - 「석보상절」
① ⓐ는 「용비어천가」에서 ''로 적혀 있겠군. |
② ⓑ는 「석보상절」에서 '다마'로 적혀 있겠군. |
③ ⓒ는 「월인천강지곡」에서 '눈에'로 적혀 있겠군. |
④ ⓓ가 조사 '을'과 결합하면 동일 문헌에서 '붚을'로 적히겠군. |
⑤ ⓔ가 조사 '이'와 결합하면 동일 문헌에서 '스스'나 '스이'로 적히겠군. |